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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동체를 세우는 삶 II

 

제 21일 우리는 함께 교제하도록 자음을 받았다. 서로에게 솔직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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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천민
댓글 1건 조회 287회 작성일 14-07-2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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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일 우리는 함께 교제하도록 자음을 받았다. 서로에게 솔직하므로

“더 이상 거짓을 말하거나 변명하지 말라. 이웃에게 진실을 말하라. 결국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이다” (엡4:25, Msg)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서로에게 정직하고 솔직할 때(잠24:26) 우리의 관계는 더욱 깊어진다.

신실하고 열린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직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직한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철저히 진실하게 행하고(딛2:7)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기 때문이다(엡4:15). 정직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할 수 있도록 한다(요16:13).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부패하게 만드는 거짓에 대항해 싸울 수 있도록 돕는다(고후 10:5). 정직은 우리가 진심으로 말하고, 또한 우리가 말하는 것이 진실일 것을 요구한다(마5:37).

우리는 사적인 면에서 뿐 아니라 공적인 면에서도 동일한 정직함을 보여야만 한다(행20:20). 우리는 다원적인 진리가 아닌 오직 하나의 진리에 헌신된 사람들이다(요14:6). “더 이상 거짓은 없어야 한다”한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이제 새사람이 되었으니 더 이상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골3:9).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다.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요8:44). 진리를 거스리는 사람들은 경건치 않고 불의한 자들이다(롬1:18).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된 삶들이다(요8:32).

거짓말에는 두 종류가 있다.

완전한 거짓말: 이것은 분명히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하는 거짓말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해야만 한다” (엡4:25)고 말한다. 우리는 “진리의 능력을 잃어버려 항상 거짓말을잘하고”(딤전 4:2, Msg) 거짓말을 단지 “흐려진 기억” (딤전 6:5, Msg) 탓으로 돌리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부분적인 거짓말: 이것은 온전히 진리를 말하는 데 실패하거나 다른 사람의 속임수를 눈감아 주는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 시대에 “가난하고 미덥지 못한 여자의 집”(딤후 3:6, Msg)에 가만히 들어가 부드러운 말로속이고 유혹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런 자들이 특징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부분적인 거짓말이다. 결국은 정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첨하는 사람보다 더 귀히 여김을 받는다(잠28:23).

서로에 정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서로를 존경하는 것이다(잠24:26, NLT)  “더 이상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부끄러워 드러내지 못한 것들을 끊어 버리고, 속임수를 쓰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진리를 밝히 드러냈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의 양심을 향해 우리 자신을 당당히 내세웁니다” (고후 4:2, 쉬운성경). 우리가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진리”(고후 1:13, Msg)를 말한다면,‘숨겨진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사실 우리는 “강력한 하나님의 무기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진리에 대항하여 높아진 온갖 왜곡된 생각을 깨뜨리고, 모든 방종한 생각과 충동적인 감정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고후 10:5, Msg).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짓이 우리의 삶을 왜곡시켜 서로에 대해 깊이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 가기가 어려울 것이다(눅16:10). 예를 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아주 사소한 말에 대해, 우리가 그 말에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의심하여 계속 되새기며 생각하다 보면, 그 말이 온 교회에 풍파를 일으키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신약 성경은 갈라디아 교회에서 그런 비슷한 사건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는 새로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기가 말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중적인 행동을 하였다(갈2:12). 그의 이러한 이중적인 행동은 새로운 신자들로 가득한 교회의 믿음을 위협하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베드로는 대면하여 그의 거짓된 행동을 책망하였다(갈2:11).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4:8).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모든 혀가 내가 유일한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정직하게 고백할 것이다” (롬 14:11, Msg).  “every knee will bow before me; Every tongue will tell the honest truth that I and only I am God.”

 ☆ 생각할 점 –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정직해야 한다.

☆ 외울 말씀 - “더 이상 거짓을 말하거나 변명하지 말라”(엡4:25, Msg)

☆ 삶으로 떠나는 질문 – 완전한 거짓말과 부분적인 거짓말이 유혹 중 당신은 어느 것을 물리치기 위해 더 애쓰는가?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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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 작성일

위의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에 떠오르는 (감정적인) 생각은 내 기억력을 핑계로 일부러 완전한 거짓말을 한적은 없다라고 변명하고 싶은 생각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내 기억력의 문제때문에 문제를 적지 않게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고의던 아니던 상대방에게 상처를 준 말을 했다는 것 조차 기억 못하는 것이 그 예 중에 하나이다.  내가 한 말을 기억조차 못함으로 자신의 말에 대한 신뢰를 잃게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의 문제는 부분적인 거짓말이다.  내 속에 진리라고 느끼는 것을 그리고 그 것을 말하므로 상대방에게 유익이 될 수 있음에도, 상대방의 기분을 염두에 두고 정직하지 못하게 대화하는 때가 수없이 많다.  물론 문제의식을 느낄 때마다 직설적으로  상대방에게 다 표현할 수 없지만, 그 것을 나중에라도 언급하며 상대방을 돕고 사랑하고저 하는가?  사랑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것을 미루기만 하고 실천 못하고 있는데.. 언젠가가 아니라  곧 실천에 옮기는 결단과 사람의 돌봄이 필요하다.  그것이 진정으로 양들을 돌보는 목자의 심정이리라.. 주님, 도와주소서 지혜와 용기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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