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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로마서 15:1-4 6/2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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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로마서 15:1-4

1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오늘 본문 말씀은 믿음이 강한 자와 믿음이 약한 자에 대한 언급으로 시작됩니다.  믿음이 강한 자란 아무 음식이나 다 먹을 수 있는 자  믿음이 약한 자는 채소만 먹는 자들입니다. (14:2)  바울은 분명히 모든 음식이 깨끗하며 다 먹을 수 있다고 밝힙니다. (14:20)  그렇다면 바울이 분명히 채소만 먹는 자들은 잘못되었고 아무 음식이나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먹도록 명령하든지 가르치도록 권고하면 될텐데 사도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의 의견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가를 말하기 보다는,  믿음이 약한자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4장에서는 “믿음이 약한 사람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15:1에서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 이라고 부탁을 합니다.  왜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만 이런 부탁을 할까?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려면 특별히 믿음이 강한자들의 책임이 결정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아는 한 오늘날에도 채소만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먹고 못먹고로 믿음이 강하다 약하다를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분은 오늘날 믿음이 약한 자들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쉽게 시험드는 자들, 항상 쓰러지기 쉬운 자들, 이기적인 삶을 사는 자들, 항상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하는 사람들, 무뢰하게 행하는 사람들, 헌신하지 못하고 항상 주변을 도는 자들 등 등…” 

우리들은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어떻게 야단치고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가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늘 말씀에 의하면,  이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교정시키라고 말씀하기 보다는 이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적인 진리에 대해서는 분명히 가르치고 잘못된 의견에 대해서는 교정해 주어야합니다. 예를 들어서 잘못된 복음이나 이단적인 교리는 절대로 용납되서는 안된다고 성경은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음식에 관한 문제라든지 특별한 날을 지키는 문제라든지 주일날 복장 문제라든지  주일을 어떻게 보낼 것이라든지 교회 음악이나 교회행정제도라든지 본질적인 진리가 아닌 것들에 관해서는 다른 의견이나 미성숙한 의견을 가진자들을 교정시키려 하기 전에  그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믿음이 강한 자들에게 믿음이 약한 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부탁하는가?  믿음이 강한 자들이 문제점을 좀 더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또,  믿음이 강한 자가 더 양보도 하고 주님의 뜻에 더 복종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실을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시험이 들었다든지 교회에서 떠난다든지 하는 경우는 그 원인이 보통 믿음이 약한 사람때문이 아니라 목사나 교회내 책임을 맡은 믿음이 강하다는 사람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매일의 양식 책자에 나오는 실지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서로 견해가 다른 성도 두 사람이 대화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 나이 많은 사람이 성경말씀을 사용하여 상대방의 삶에서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 것을 난도질하듯 지적하였습니다. 나이 어린 사람은 그의 훈계에 지쳐보였고, 낙심한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나이 든 사람이 상대방이 관심 없어 하는 것을 눈치 채고는 훈계를 중단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열심이 많더니… (이제는)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그러자 젊은 사람이 말했습니다. “성도님은 저를 사랑할 기회를 놓치신 거예요. 성도님은 그동안 줄곧 제 잘못을 지적하는 것만 중요시 하셨잖아요. 제가 무얼 원하느냐고요? 성도님 안에서, 성도님을 통해 예수님을 보고 싶어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앞으로는 따지고 가르키려고 하기 전에 사랑하므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해보았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상대방에게 올바른 말을 해 주느라고  사랑할 기회를 놓친 경우는 없었습니까?  올바른 말을 하므로 오히려 상대방을 낙담하게 만들고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드러낼 기회를 놓친 경우는 없었습니까?.

"지식은 교만케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고전 8:1-2  모든 지식을 소유하고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집시다)  내가 볼 때 믿음이 약하고 잘못된 의견을 갖고 있고 회개할 필요도 있는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해 봅시다.  어쩌면 이들은 이미 나와 원수가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봅시다.  그는 나에 의해서  교정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받아야 할 대상임을 기억하십니다.  성령님께 이 분에게 사랑을 베풀 기회를 다시 달라고 간구하십시다.  그리고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먼저 사랑을 베풉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상대방을 교정해야 할 의무는 없고 사랑해야할 의무만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우리를 자유케 합니까?  이 것은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와 의견이 다르고 맘에 안들어 하는 자도 받으셨다고 배우지 않았습니까?  네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비판합니까?란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까? “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주께서 그를 서 있게 할 수 있으시니, 그는 서 있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대로 그를 교정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를 받아들이고 사랑하면됩니다. .

“언제나 사랑이 훈계보다 낫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나를 기쁘게 하지 않고 상대방을 기쁘게 하므로 세워주라고 말씀합니다.  훈계하는 것은 나를 기쁘게 할지 몰라도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상대방을 세워주고 성숙의 길로 인도함니다..  결국 사랑이 최선의 훈계의 길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이 약한 자들에 정죄하거나 미워하며 관계성이 불편해 지거나 아니면 무관심으로 결국 관계성을 잃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 나를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남을 기쁘게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성장을 소원하고 좀더  깊은 믿음을 갖기 위해 배우고 있지만, 성경은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언급된 사랑의 특징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 남을 판단하고 업신여기고 정죄하고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나의 기쁨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음 절 3절을 보시면,  왜 우리가 자기를 기쁘게 아니하고, 상대방을 기쁘게하고 세워주는 삶을 살아야할 진짜 중요한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자기를 기쁘게 아니하고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세워주는 것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기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는지를 설명합니다: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메시야의 사역을 예언한 시편으로서 (69:9),  하나님을 비방하는 사람들이 메시야인 예수님을 비방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님을 비방하는 자들이 받아야 할 벌을 메시야가 대신 받았다는 뜻도 됩니다.  죄인들의 죄를 메시야가 뒤집어 쓰고 이들을 위한 제물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두가지의 해석이 다 예수님의 삶을 묘사합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처럼, 자신보다 남을 낫게, 귀하게 여기는 마음, 남을 위해 희생까지 감수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겸손과 섬김으로 남을 기쁘게 하는 삶은  일시적인 인간관계 처세술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성격이요  모습이어야합니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그랬는데  잠시 섬기는 것이 아니라 평생 섬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십자가를 지기까지 끝까지 서로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 말은 너 무 엄청난 말이지만  제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서로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명령이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오셨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훈계하므로 변화시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그 분은 섬기고 희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결국 변화시켰습니다.  (“People don't care how much you know until they know how much you care”) Theodore Roosevelt  사람들은 당신이 그들을 얼마나 돌보는가를 알기전에는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가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을 따라 행하라라고 명령합니다. (14:15)  믿음이 약한 자들이 필요로 한 것은 새로운 지식보다 그리스도의 심정으로 그들을 대해주는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우리를 섬기시고 희생하시고 우리를 구원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들 차례입니다.  우리를 기쁘게 하기 보다는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 (격려)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나를 부인하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세워주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성경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성경말씀 속에서 우리는 소망을 얻기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참으실 수 있으셨던 것은 그 앞에 있는 기쁨때문이었습니다. 이 것이 소망입니다.  그래서, 소망이 있는 자들은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기쁨이 아니라 남의 기쁨을 위해 사는 자들임에도 오히려 더 큰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앞에 있는 기쁨,  소망때문입니다.  그 것은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기쁨 혹은 육적인 기쁨과는 다른 기쁨입니다.  소망이 주는 기쁨은  성령안에서 누리는 기쁨, 하늘 나라의 기쁨을 말합니다. 

그래서 “소망 중에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롬 12:12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무조건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약속과 소망이 있기때문에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 있는 소망이 우리로 희생도 하게 하고 사랑도 하게하는 것입니다.

골로새교회에 사도바울이 보낸 편지내용을 읽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게 품은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가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골로새서 1:3-5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자기 교인들 뿐 아니라 골로새 교회 밖의 모든 성도까지 사랑을 품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을 어떻게 갖게 되었습니까?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통해서 갖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망 때문에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양목사님과 우리 학생들 4명이 아리조나로 선교 여행을 떠납니다. 박진용 선교사님은 이번 주에  4일간의 선교사역을 위해서 인도를 방문합니다. 수 많은 선교사들이 고생을 감수하며 떄로는 목숨을 감수하며 인종과 언어와 습관이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집을 떠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리고 선교팀이나 박진용 선교사님이나 그 외의 모든 선교사님들이 선교지에서 무슨 일을 합니까?  수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적은 하나입니다  현지 사람들에게 천국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믿고 구원받고 천국가라는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죽음 후에 하늘나라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과 모든 죄와 아픔에서 온전히 해방될 사실과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하며 기쁨 가운데 살 것에 대한 분명한 소망가운데 산다면,  우리도 선교사들처럼 열정적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충만한 자들은 현재적으로 하늘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 수 있습니다. 

반면,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먹고 살기에 바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것들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소망을 경험치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 대한 감격과 구원의 감격을 잃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랑이 부족하다면 남을 위해서 살고저 하는 마음이 부족하다면 우리에게 소망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십시요.  그리고 소망이 부족하다면 그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란 사실을 인정하십시요.
이제 우리가 다시 살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소망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념하여 하늘나라의 소망으로 충만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사랑과 섬김의 삶을 살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아직까지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서 골로새서 1:5을 다시 읽어드립니다.  “여러분의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인 복음을 듣고 받아들일 때에 천국의 소망 구원의 소망을 갖게된다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내용의 여러 부분이 John Piper목사님의 설교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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