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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기뻐하라” (2) 빌립보서 3:1-7 11/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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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기뻐하라” (2)  빌립보서 3:1-7  11/4/2018

1    끝으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 2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3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4    하기야, 나는 육체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5    나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습니다. 7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 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명령하는 것이 전혀 번거롭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도 제 아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조심하라고 권고합니다.  전혀 번거롭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말하게 되 있습니다.  바울도, 주안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반복하고 반복해도 번거롭지 않고, 또 그렇게 해야 안전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잃을까봐 반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잃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 안에서 기쁨을 잃는 것은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이요,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왜 이토록 중요합니까?
 
첫째로는, 우리가 예배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배자가 아니었다면, 주 안에서 기뻐하는 말든 젼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자로서 우리는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한다면 아내와 함께 있기를 즐기며 아내에게서 기쁨과 만족을 구하는 것처럼,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분과 함께 있기를 원하며 그 분 안에서 참 기쁨과 만족을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에게서 만족과 기쁨을 구하지 않으면 위험한 일이 듯이,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참 만족과 기쁨을 구하거나 누리지 않는다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주님 안에서 기쁨을 잃는 것이 그렇게 위험한 일이요,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은 이토록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명자이기 때문이다.  빌립보 교회는 큰 환난의 시련과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넘쳐 흐르는 기쁨이 있었기에 넉넉한 마음으로 오히려 남에게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성도의 능력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제 삶을 돌이켜 볼 때도 주님 안에서 기쁨이 있을 때는 의욕이 있고 능력있게 그리고 담대하게 사역을 감당합니다.  그러나, 인상을 찌그리고 불평하면서 사역을 한다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뮬러는 수 많은 고아들을 돌보면서 “내가 매일 매일 제일 먼저 감당해야 할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은 내 영혼이 주님 안에서 행복함을 갖는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사역에 앞서 먼저 주님을 구하고 주님과 교제하므로 주님 안에 기쁨을 갖는 것이 사역 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과 저의 영혼이 주님 안에서 기쁨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도록 서로 서로를 믿어주고 응원하고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거나 누리지 못하면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지기 쉽고 사역도 제대로 감당치 못하게 되는 큰 위험에 빠지게 되므로 우리는 주 안에서 기쁨을 추구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날 “주님은 포도나무요 그 제자들은 가지다"란 비유의 말씀을 하신 뒤에 (요한복음 15:11절에)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안에서의 기쁨은 주님의 기쁨이요 주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가지인 우리들이 포도나무인 주님께 붙어 있어서 포도나무로부터 계속 사랑과 은혜와 말씀의 공급을 받아야 기쁨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의 기쁨이 이토록 중요하니까 사탄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뱀이 그 간계로 (간사한 꾀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 11:3)  사탄은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이 없다면 우리는 그 간사한 사탄의 간계에 이미 넘어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우리는 주님 안에서의 기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저희 집 내부공사를 하고 있는데요.  그저께 먼지가 많아서 문을 활짝 열어놓았는데 모기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약 2시간 동안  7방 물렸습니다.  1,2방 물리고 나서는 모기를 꼭 때려 잡겠다고 눈뜨고 보고 있을 때는 기가 막힐 정도로 모기가 안오고 꼭 다른 것에 한 눈 팔면 모기에 물립니다.  소리도 안내고 몰래 와서 물기 때문에 가렵기 시작해야 모기에 물린줄 알게됩니다.  모기처럼 사탄도 우리들이 보고 있지 않을 때에 몰래 소리 없이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언제 우리를 물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에게서 만족과 기쁨을 구하지 않고 세상에 속한 것들에게서 만족과 기쁨을 구하고 있다면 이미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줄 아시기 바랍니다. 

결국 주님 안에서 참 만족과 기쁨을 구하느냐 아니면 밖에서 구하느냐의 문제는, 마치 모기가 많은 방에서 모기와 싸우듯 물리느냐 마느냐 하는 매일 매일 순간 순간 싸워야할 영적전쟁이란 것을 우리 모두가 믿기바랍니다.  아침마다 승리하겠노라 결심을 하지만, 하루 사는 동안 마귀의 간계에 넘어가 잘 때는 오늘도 졌다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포기가 안됩니다  우리들의 숨이 붙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싸워야 하고 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싸워야하고 이길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사탄에게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이리 물어 뜯기고 저리 물어 뜯긴 분이 있으십니까?  절대로 포기하지 마시고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우리를 사랑하실 뿐 아니라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그 분의 기쁨을 주시기를 그토록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싸워 이기므로 주님 안에서 기쁨을 누려야합니다  우리는 예배자요 사명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2절에 보니까, 사도바울이 이렇게 기쁨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한 뒤, 막 바로 개들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십시오.”  (2절 조심하라)  왜 개들을 조심하라고 말합니까?

바로 이 개들이 기쁨을 빼앗아 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영적모기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주 안에서 누려야 할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잠시 기쁨을 주는 인생의 여러가지 유혹에 한 눈 팔다가 주님의 기쁨을 빼앗기기도 하고,  또, 건강문제, 자녀문제, 경제문제, 인간관계 문제등 인생의 여러 문제때문에 기쁨을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특별하게 “개들"이라고 부르는 한 그룹의 사람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23:17-18절에 보면 “남창”들을 개로 불렀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취급하여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금 바울은 할례파 유대인들에 대해 “개”라고 욕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사도바울이 할례파 유대인들을 왜 이토록 개들이라고 부르면서 경멸하는가?  이들을 악한 일군들이라고 부릅니다.  이들이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까? 이들도 예수님을 나름대로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들의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시고 오순절날 성령님이 임하시므로 시작된 예루살렘 교회는 모두 다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예수를 믿기 전에 이미 다 할례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순절 이후 약 10년 정도는 모든 성도들이 유대인들이요 할례를 받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에도 증거되면서 할례를 받지 않은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먼저 예수를 받아들인 유대인들 중에는 이방인이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를 믿는 것만가지고는 부족하고 자기네들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모든 사도들과 교회대표들이 모여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교리를 정식으로 채택합니다  그럼에도 수 많은 할례파 유대인들은 이에 굴복치 않고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여행을 통해서 복음을 받아들였던 갈라디아 교회들에게까지 찾아가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의롭게 될 수 있다고 가르쳤고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말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책망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갈 1: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러니까 바울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변질된 복음을 전하는 할례파 유대인들을 저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할례파 유대인들은 갈라디아 뿐 아니라 바울이 교회를 세운 곳마다 방문하여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교리를 전파했습니다.  이 할례파 유대인들이 빌립보 교회에도 왔던 것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은혜만으로는 부족하고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야만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여러분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갈 5:4)  은혜에서 떨어지면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실지로 헬라어에서 기쁨이란 말은 χαρά, ᾶς, ἡ  선물 혹은 "은혜"를 뜻하는 카리스(charis)란 말과 같은 어원의 말입니다. 기쁨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때문에 갖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들은 결코 주님의 기쁨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는 자들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도 없으며, 미래에 대한 절대적 소망을 가질 수도 없고, 주님께서 나를 받으시고 용서하였다는 확신도 가질 수 없으므로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는 이 할례파 유대인들이,  아직 신앙에 어리지만 구원의 확신과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살고 있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늑대처럼 와서 “너희들 구원은 가짜다. 할례를 받고 끝까지 율법을 다 지키기 전까지는 의롭게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그들이 갖고 있던 구원의 기쁨과 소망의 근거를 송두리채 뽑아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너무 화가나서 이들을 가리켜 저주 받을 자, 악한 일군들, 개들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조심하지 않으면 구원의 기쁨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기쁨, 주 안에서의 기쁨을 누리는 자는 어떤 자들인가?
3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참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자요,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요. 참으로 할례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것과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반대되는 개념 즉 예수님보다는 자기를 자랑하고  육체 (세상)에 속한 것을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 줄 알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본문 4-6절에 보니까, “하기야, 나는 육체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5 나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습니다.”

자기를 자랑하고 육체 (세상적으로)를 신뢰할 만한 여러 조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식으로 말한다면 자신의 문벌과 학벌과 경력과 자신의 의가때문에 자신을 신뢰할만 하고 자랑할 만한 경력과 조건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자랑하며 신뢰하고 이런 것들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자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상을 숭해하는 것입니다, 결국 자신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각 자 속에는 자신을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는 속성과 습관이 뿌리깊이 박혀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에 속한 것으로 기쁨을 추구하고, 높임을 받기를 원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에 민감합니다.  예수님께서 금식할 때나 기도할 때나 구제할 때도 하나님에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금식이나 기도나 구제할 때도 소위 영적인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해서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저도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면서 살았지만, 저희 큰 누나는 지금 80인데요, 이 큰 누나가 중학교 다닐 때 뻐스탈 비용이 없어서 동대문구 휘경동에서부터 종로구 수수동까지 걸어다녔다고합니다.. 서울 지리를 아시는 분들은 이 것이 얼마나 먼 거리인 줄 압니다 그런데도 그 먼거기를 직선거리로 안가고 저쪽 왕십리쪽으로 더 먼거리로 돌아서 걸어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돈이 없어서 걸어다닌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얼마나 안됬고 피곤한 인생입니까?  어른이 되서도 무시 안당하고 인정받고 사는 것에 목숨을 건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가 아는 목사님이 ‘나도 서울대학교를 다녀봤으면 좋겠어요" 라고 두번 반복해서 그러는데 처음에는 한심하게 들렸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도 같은 소원이 있었던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다녔다는 것이 행복을 주고 기쁨을 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서울대 나온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또 그들대로 비교하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느낍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러는 것은 당연하지만, 예수 믿는 우리가 세상의 것을 부러워하며 침을 질질 흘린다면, 주님의 은혜를 과소평가하는 개와 비슷한 존재라고 비난을 받아야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자기를 자랑하며 자기를 예배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고 월등감도 느끼고 열등감도 느끼는 그런  삶을 되풀이 하면서 진정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고 피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신이 육체적으로 자랑할만하고 신뢰할 수 있었던 이런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또 그는 그리스도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오직 예수님만을 자랑하고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하는 자들입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빌립보서 4:4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주안에서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자랑하고 신뢰하던 것들은 변합니다.  미모도, 건강도, 재산도, 학력도 경력도, 인기도 명예도 권력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 내일이 영원토록 변치 않으신 분이십니다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시되, 변함이 없이 나쁜 분이 아니라, 영원토록 변함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좋은 분입니다.  그리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그 분이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가운데서도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이 놀라운 사랑을 드러내시기 바로 전날 밤에 “ “내가 이것(들)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시며 내 안에 거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주님 안에 거하면서, 이 주님을 자랑하고 신뢰하는 자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요 환경을 초월하여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입니다.  예배순서가 나와있는 주보면 왼쪽을 보시면 우리는 기쁨을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할까요? 란 제목의 리스트가 있습니다.  2. “기쁨을 위해서는 쉼 없는 싸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기쁨을 위해서 갖게 될 쉼 없는 싸움은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예수님만을 신뢰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 승리하여 주 안에서 기쁨을 누리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싸움에 지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회개하시고 다시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신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십니다. 결국 이 싸움에서 승리하여 기쁨을 누리며 예배자로서 그리고 사명자로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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