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요" 마태복음 5:14; 에베소서 5:8 2017년 1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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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도 1월에 제가 뇌종양 수술을 두번 받고 두달 반 동안 입원생활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입원생활을 하는동안 밤이 그렇게 싫었습니다. 아침이 오기를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해가 떠오르면서 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창문 밖으로 드러나는 그 아름다운 산의 모습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밤마다 새벽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렸던 것을 지금도 잘 기억합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이 이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햇빛과 같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태는 예수님께서 유대광야에서 40일간의 금식과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서 갈릴리 지역의 가버나움 지역에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때를 마태는 “흑암가운데 사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라고 묘사합니다. (마 4:16, from 사 9:1). 예수님을 흑암의 땅 죽음의 그늘진 땅에 절망의 땅에 비쳐진 큰 빛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이 절망과 죽음의 그늘진 땅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외치십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절망 가운데 살던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이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회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모시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도 예수님의 나타나심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사역을 거의 끝내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요 12:36) 빛이신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므로 빛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도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에베소 성도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엡 5:8)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인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도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라고 선포합니다. (살전 5:5) 어둠에 속했던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세상의 빛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이렇게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빛이 된 자들은, 마치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질 수 없고 보일 수 밖에 없듯이, 세상을 밝히는 존재로서 드러나게 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옛날에 동현이가 놀다가 소파에서 떨어졌는데 바닥에서 두리번거리면 뭘 찾더랍니다. 뭘찾느냐 물어보니까, 동현이가 대답하기를 자기가 소파에서 떨어질 때 예수님이 마음에서 떨어졌나 찾아 보는거라고 하더랍니다. 제가 왜 갑자기 동현이 이야기를 하냐하면, 동현이와 비슷한 어린 여자아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주일날 이 아이가 교회모임을 끝내고 돌아오면서 어머니에게 목사님의 설교를 자기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엄마가 이유를 물어보자 아이가 오히려 물어봅니다.. 목사님이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보다 큰 분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렇지” 엄마가 대답합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신다고 그랬지요? 엄마가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아이가 묻습니다. 우리 보다 더 크신 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면 그 분이 밖으로 튀어나와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보다 크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그 분이 우리 밖으로 튀어나오게 되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이 드러나게 되있습니다. 그러나 빛되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고 있습니까?
지난 주일에 저는 마티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숨을 걸고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를 주장했던 분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선행이나 종교적 노력에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그는 외쳤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시작한지 삼십년쯤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슬픈 나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소위 믿음으로만 은혜로만 새생명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방종한 삶을 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루터는 너무 마음이 상해서 자신이 살던 도시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방종하는 그 사람들을 보고서 속이 상해서 설교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설교 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일이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벌어지고 있다고 염려되고 있습니다. 도대체 교회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가라고 염려하게 되는 상황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치루신 값비싼 은혜가 값없는 은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초대교회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진정 믿음이 있는가 시험해보라고 경고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라고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엡 2:8-9) 우리가 귀가 따갑게 반복해서 들은 말씀입니다. 구원은 예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우리의 행위와 상관 없이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 것은 결코 변개될 수 없는 진리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만드셨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살도록 우리를 준비하셨다고 말합니다. 선한 일에 전문가가 되도록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엡 5:8)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대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작품으로 새롭게 창조된 피조물답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기대요 명령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빛의 자녀답게 살 수 있을까?
첫째로, 빛의 자녀답게 살려면 성경말씀을 가까이 대해야 합니다.
루터가 전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였지만 결국 그들이 방종한 한 삶을 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그들은 복음은 받아들였지만 오늘날처럼 성경도 성경교사도 많지 않은 상태에서 말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실지로 신약성경의 서신서를 보면, 어떻게 사람이 구원 받는 가에 대해서 보다는 어떻게 구원 받은 자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하는가를 훨씬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한가지 사실 하나로 우리가 빛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래서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성경의 중요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성경이 그리스도인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도록 주신 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이니이다”(시119:105)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로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빛의 자녀답게 살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저와 여러분이 이미 이론적으로 너무나도 잘 아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음에도 실질적으로 성경말씀과 우리가 가까이 하고 있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요즘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도 상대방을 보지 않고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을 종 종 봅니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까 제 자신도 그러고 있더라고요.
IT전문가인 니콜라스 카아라는 분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 있다」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분에 의하면 “미디어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이것이 뇌 구조를 바꾸기까지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자신 스스로에 대한 관찰을 고백합니다. “나는 한 가지 일에 몇 분 이상 집중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중년에 들어서면서 머리가 무뎌져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뇌가 단순히 일시적으로 표류하는 정도가 아님을 깨달았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나의 뇌는 굶주려 있었다. 나의 뇌는 인터넷이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되기를 바랐고, 더 많은 정보가 주어질수록 더 허기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이 분이 뇌가 굶주려있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에 대한 갈증을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메시지가 와 있을지 모른다는 느낌”에 저항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 자신의 상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는 사람으로부터 온 개인적인 메시지이던 뉴스던, 샤핑에 관한 것이든, 일반지식에 관한 것이든, 연예계에 관한 것 스포츠에 관한 것이든 홍수처럼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를 알리는 메시지에 대한 궁금증을 말할 것입니다. 이런 흥미 궁금증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 시간도 없고 여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로마서 12:1-2을 읽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려면, 우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알아야 하는데, 그럴려면,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으면서 빛의 자녀로서 살 수는 없습니다.
제이비 필립스는 성서학자는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란 말을 “세상이 당신을 세상의 틀에 쑤셔 넣게 내버려두지 말고”라고 번역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세상이 우리를 세상의 틀에 쑤셔넣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 해결책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인데, 이 구절은 제이비 필립스는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그 안에서부터 새롭게 다시 형성하시도록 맡겨드리십시오.”로 번역하였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그 안에서부터 새롭게 다시 형성하시도록 맡겨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까? 빛으로 산다는 것은 단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행을 행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세상의 틀에 쑤셔 넣게 내버려둔다면 우리는 결코 빛의 자녀로서 역할을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미디어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 영향을 받겠다는 결단, 때로는 스마트폰과 인터넷과 미디어를 멀리하고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겠다는 결단이 없다면 결코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두번째로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기도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라고 말씀한 뒤 그 뒤에 어떻게 빛의 자녀답게 살 수 있을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 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 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엡 5:10-11) 그리고 14절에 어떻게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분별하고 어둠의 일을 폭로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실 것이다"
잠자는 사람을 죽은 사람에 비유했습니다. 영적으로 살아 있으나 자고 있기 때문에 실지로는 영적으로는 죽은 자와 다름 없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빛의 아들들은 자지 않고 깨어 근신하는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면서, 정신을 차립시다.” (살전 5:5-6)
그리고, 깨어 있는 삶은 기도하는 삶이라고 성경은 반복적으로 말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26:41)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21:36)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에베소서 5:14절 말씀 다시 읽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환히 비추어 주셔야 우리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어두움의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럴려면 깨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박명근 형제님이 지난 수요일 저녁에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다음주 주일(11월12일) 예배때 제게 10분정도의 시간을 주시면 성도님들 앞에서 간증을 하고 싶습니다” - 제가 먼저 부탁해서 간증한 분들은 있지만, 먼저 제게 간증하게 해달라고 부탁을 받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박명근 형제님이 이번에 뜨레스 디아스에 올라가서 기도를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도를 하면 우리의 이성이 달라집니다. 적극적이 되고, 담대해지고, 관대해지고, 긍정적이 됩니다. 기도가운데 깨어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추어 주시기 때문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옳은지 좀 더 분명히 볼 수 있게됩니다. 세상의 빛답게 살 수 있게 해줍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성도들에게 편지 보내면서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요"란 말 대신에 “빛의 갑옷을 입으라"라고 권고합니다. (롬 13:12) 빛의 갑옷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움의 세력들과 싸우는 군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놀이터가 아니라 전쟁터입니다. 기도란 하나님께 초점을 마추므로 세상의 영향력과 싸워 이기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 가운데 깨어 있어 빛의 갑옷으로 무장할 때만이 세상과의 전쟁에 이기고 빛의 아들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빛의 자녀다운 삶을 살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들이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물론 개인적으로 세상의 빛이지만 또한 교회로서 공동체로서 세상의 빛입니다. 실지로, 신약성경 서신서를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나가서 각 개인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가 보다는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한 맘과 한 뜻이 되어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야할까를 훨씬 더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교회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빛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한다면 교회 밖에서 빛으로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희들이나 잘하라라고 말할 것입니다. 실지로 세상사람들이 교회를 비난할 때 다른 것도 문제삼지만, 가장 흔하게 비난하는 것은 성도들끼리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싸우면서 결코 빛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 보면 어떻게 빌립보 성도들이 세상에 빛의 자녀들로서 살 수 있을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빌 2:14-15)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이나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려면 단지 한가지 조건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이나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라고 말합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교회가 세상에 빛으로 드러나지 못한다면, 그 이유가 신문에 날만한 큰 죄들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우리가 서로에게 불평하고 시비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교만, 정죄, 자기 중심, 불평, 원망, 시비 같은 것이 결국 교회를 파괴하고 교회가 세상에 빛을 발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만찬을 듭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 가운데 주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또 내 속에 불평하는 마음과 시비가 없는지.. 살펴보고 회개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은 남을 돌아보는 시간이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다른 사람이 빛을 발하고 있는가를 판단하지 말고 내가 빛을 발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므로 우리 가운데 온전한 사귐이 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시며 소원으로 말씀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서로 사랑하는 헌신을 통하여 세상사람들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게되는 역사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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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엡 5:8)
(및의 자녀답게 살려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4) ;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엡 5:8)
1, 성경말씀을 가까이 대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딤후 3:16-17)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여러분은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롬 12:1,2).
2. 기도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10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별하십시오11 여러분은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끼어 들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폭로하십시오… 14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아, 일어나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환히 비추실 것이다" (엡 5:10,11,14)
빛의 아들들의 삷은 자지 않고 깨어 근신하는 삶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면서, 정신을 차립시다.” (살전 5:5-6)
깨어 있는 삶을 기도하는 삶: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26:41);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21:36);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골 4:2)
3.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고후 13:15)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언제나 순종한 대로, 내가 함께 있을 때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이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자기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오
(빌 2:13-15)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 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 다. 14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이나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 15 그리하여 여러분 은, 흠이 없고 순결해져서, 구부러지고 뒤틀린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