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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대신 감사하며 기도하라” (빌립보서 4:6-7) 1/27/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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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대신 감사하며 기도하라”  (빌립보서 4:6-7)  1/27/2019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 본문에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성경에 곳 곳에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 가운데 염려가운데 있는 분 있습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염려거리가 많고,  염려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국처럼 모든 삶의 환경이 좋고, 풍부하고 편리한 사회에서 도 18세이상 성인들 중 18%가 거의 20%가 불안장애를 (Anxiety order)  앓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성경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하는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이기 때문에
주님께서 어떻게 먹고 살까를 염려하는 제자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들풀도 이렇게 입히시는데 하물며 너희를 안돌보시겠느냐라고 반문하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들아”(마 6:30)라고 책망하십니다.  염려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요,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왜 염려하는 것이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인가? 3가지 가능성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사정을 나 보다 모른다는 고백이거나, 그 분이 우리 사정을 알더라도 우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거나 아니면, 그 분이 우리 사정을 알고 우리 사정을 해결할 능력이 있더라도 우리 사정을 해결해 주실만큼 관심이나 사랑이 없다라는 고백이기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갈릴리 호수를 배타고 건너다가 광풍을 만나, “우리가 죽게 됬는데 예수님이 돌보시지 않는다고 난리치니까, 예수님께서 같은 책망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 고민하여 걱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는데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향하여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너희들이 그렇게 나를 모르느냐"라고 책망하신다는 것입니다.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병이요 죄이기 떄문에 그렇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는 이 구절을 잘 압니다. 그런데 그 다음구절에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 6:24-25)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죄인데, 이 죄를 범치 않으려면,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염려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고, 양심을 포기하고 돈을 벌고자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먹고사는 염려때문에 돈이란 우상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려드립니다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염려를 선택하지 말고 믿음을 선택하라란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염려를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염려하는 대신 믿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본문을 다시 읽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염려대신 기도하라고 명령합니다

기도는 문제자체에 초점을 두기 보다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게 맞추려고 하기 전에,  내 자신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안목으로 내 자신과 문제점을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내 관점과 의견과 내 뜻을 하나님께 주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내가 하나님의 뜻과 의견과 관점에 동의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항복하는 시간입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께 조율  시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율기를 내 악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악기를 조율기에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기도하는 것이 때로는 쉽지 만은 않습니다.  오늘 옆에서 찬양연습 하는데 기타줄을 조율시킬라 그러니까 키타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줄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찬양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는데, 박소라 자매님이 계속 피아노를 쳐서 천상 저 구석에 옮겨가서야 줄을 맞출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맞추려고 할 때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서 수 많은 잡다한 음성이 들려오면 주님에게 우리의 마음을 조율 시킬 수 없습니다.  지난 주 설교에도 말씀드렸지만, 2주전 금요일 약 10일전 교회 건물 사용에 관해서 까다롭게 하는 어떤 분 때문에 제 마음이 계속 편치 않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 다음 날 거의 오후 2시가 되도록까지 계속 마음이 편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저를 사로잡는 잡다한 생각과 염려때문에 사실 기도도 잘 안되었습니다. 다른 분들같으면 쉽게 넘길 수 있는 문제를 제가 이렇게 마음쓰는 것을 보면서, 그 분의 문제라기 보다는 마귀가 그 분을 통해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저의 잡념과 염려를 예수 이름으로 쫓아내고, 주님이 나를 지배하도록 크게 소리 내어 선포했습니다.

“주님, 내 감정에 상관 없이, 주님의 저를 향한 사랑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저를 향한 약속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저를 향한 선언과 소원과, 주님의 저를 향한 심정, 주님의 저를 향한  목적, 뜻, 계획을 선택합니다., 주님의 저를 향한 관점과 음성과 , 주님의 저를 향한 통치와 주권을  선택합니다. 선포합니다.  주님 저를 다스리시고 지배하소서”라고 큰 소리를 내어 선포하며 기도할 때 마음이 좀 정리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들도 수 많은 잡다한 음성들과 이 세상의 수 많은 염려들로 마음이 괴롭고 혼란하여 기도조차 안나올때는, 큰 소리내어, 주님의 이름으로 이런 염려와 음성들과 생각들을 쫓아내시고 여러분 자신을 향한 주님의 선한 계획과 뜻과 의도와 관점과 음성을 선택하시고 선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꼭 이렇게 소리내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기도 가운데 우리의 염려하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위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동의하고 의지하고 선포할 때, 주님께서 평안을 주실 것입니다.

두번째로, 염려가운데 있을 때 바라는 것을 간구 하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염려스러운 상황,  힘든 상황 그래서 근심 가운데 있더라도 감사할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번에 마음이 불편해서 기도할 때에, 주님의 저를 향한 소원과, 심정과, 목적과, 계획과 음성을 주님의 저를 향한 통치와 주권을  선택하겠다고 선포하며 주님께서 저를 다스리시고 지배해달고 주님과 동의하고 선포하는 기도를 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용서를 주시고 주님과의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의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자나 깨나 주님을 위해 살 수 있는 영원한 목적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주님의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구원을 주시고 영원한 상속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깨끗한 양심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이 것들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그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것들이고 주신 것입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들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이 좋고 귀하고 복된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고 먼저 자기 아들도 이끼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그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항상 기억하고 감사해야할 줄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수 많은 놀라운 이적을 행하시므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셨지만, 이스라엘은 불과 사흘만에 모세에게 불평하기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쉽게 잊고 그 감격을 잊고 살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도 에베소 성도들에게  “(생각하라.  좀 더 정확한 번역은 “기억하라” - “잊지 말아라"입니다 Remember or Don’t forget) 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엡 2:11 “잊지 말아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과거에 것 뿐 아니라, 현재적으로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 감사할 줄 모릅니다.
우리의 심장은 매일 대략 10만 번의 박동을 하면서 우리 몸의 모든 세포에 피를 보냅니다.
우리 몸의 각 장기뿐 아니라, 우리가 숨쉬고 먹고 마시고 살 수 있는 환경적 여건들도 기적같은 것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보면 우리 주위에 로버트 슐러가 말한대로 매일 수백만 가지의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백만 가지의 기적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인 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이런 놀라운 손길 가운데 살면서도, 무신론자처럼 감사하기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우리는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말씀처럼은 현재의 복도 그리고 과거의 복되 세어 보란 말씀입니다. 염려할 것만 생각하는 자가 되지 말고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자로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입니다.


세째로 마지막으로, 기도로 감사함으로 아뢸 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한다고 말씀합니다. 본문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오래 전 이야기지만, Allen Gardiner란 영국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 .  1851년에 그는 영국에서 남아메리카 선교지로 항해하던 중 배가 외딴 섬에서 좌초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딴 섬에 남아 그 선교사님과 동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애썼지만 결국 다죽고 마치막으로 Allen Gardiner 선교사님도 그 섬에서 목마름과 배고픔으로 죽었습니다.  정말 고통스럽고 끔찍한 죽음이었겠지요.

나중에 사람들이 그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 시체 옆에 일기장이 있었습니다.  일기장을 열어보니까 그가 마지막으로 기록했던 말씀이 시편 34:10절이었습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리고 이 구절 바로 다음에 자기 말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내 마음이 압도되어 있습니다.” “I am overwhelmed with a sense of the goodness of God.” 왜 이 Allen Gardiner 선교사님은 목이 타고 굶어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나 분노를 표현하지 않았습니까? 왜, 이 분은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까?  그의 심령이 “하나님의 좋으심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목이 타는 것과 굶주림 가운뎃도 하나님의 평강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Allen Gardiner 선교사처럼 이렇게 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자와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하기 보다는 오히려 염려와 불안함을 느끼는 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성경은 하나님과 관련된 평화가 두가지 있음을 말합니다.  첫번째로는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peace with God) 두번째로는 하나님의 평화, 하나님의 평안을 말합니다. (peace of God)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과의 평화를 갖게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과 화평된 관계를 갖게된 것입니다. " 예수는 우리의 범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시고,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려고 살아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평화가 있습니다  (화평을 누립니다)” (롬 4:25-5:1) 

우리가 이 자리에 나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평화가 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과 화평된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하여야 이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삶을 살 것인가?

이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 모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the peace of God, which surpasses all understanding) 하나님의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과 다른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평화를 너희에게 남겨 준다. 나는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요 14:27)  주님께서 평화는 주시지만, 그 것을 누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들이 염려하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누릴 수 있는 평강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환난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을 말합니다.

이런  평안을 우리가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뢸 때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던지 이 세상 그 누구도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여 감사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염려거리와 우리 주위의 모든 환경과 여건뿐 아니라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목적을 기도 가운데 인정하고 동의하고 우리 자신을 복종시킨다면,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를 갖게되고, 염려를 극복하며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미 하나님과 화평된 관계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삶은 우리가 받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매일의 삶 속에서 얼마나 기억하고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며 인정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고후 6:1)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주신 것들  죄의 용서 받음, 하나님과 화해, 자녀된 특권, 주님과의 특별한 관계… 사명, 목적 이런 것들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게 여기며,  또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과 목적과 사랑을 받아들이며 또, 우리의 것을 아뢰며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에...  성령님께서 모든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 하나님의 평강으로 저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주님의 은혜 때문에 나는 복되다라고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간구할 수 있는 그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항상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놀라운 은혜로 감격하며 감사하는 살을 살게 하소서. 
극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자족할 줄 아는 삶을 살게 하시고 간구할 때에라도 감사로 간구하게 하소서.  평화는 성령님을 통해서 맺게되는 열매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소서. 우리 각자가 주님 안에서 누리는 은혜와 평강으로 말미암아 화평케 하는 자 평화를 심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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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no_profile 박천민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염려대신 감사하며 기도하라”  (빌립보서 4:6-7)

왜 성경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신하는 죄이기 때문이다.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사정을 나 보다 모른다는 고백이거나, 하나님이 우리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고백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 사정을 해결해 주실만큼 관심이나 사랑을 가진 분이 아니란 고백이기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염려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염려대신 기도하라고 명령한 다. 기도는 문제자체에  보다는 하나님에게 초점을 두는 것이다.  하나님 을 내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하나님께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맞추려고 할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 있는 수 많은 잡음때문에 주님에게 우리의 마음을 조율 시키기 쉽지 않다. 때로는 한적한 환경이 필요할 수도 있고 여러 잡념과 염려를 쫓아낼 필요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과 약속이 나를 지배하도록 크게 소리 내어 선포하며 기도할 필요도 있다. 어떻게든 우리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하나님과 온전히 동의할 때 하나님의 평강을 경험할 수 있다.

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고되 고 염려스러운 상황에서도 우리에겐 감사할 것이 있다는 말씀이다. 이 명령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인 그리스도인 들에게만 해당하는 명령이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므로 받게된 용서와 영생과 영원한 사랑의 관계와 의로움과, 영원한 목적과 상속과 주님을 섬길 수 있는 특권 등은 그 무엇으로도, 그 어떤 노력으로도 얻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것들이며 내가 염려하는 그 어떤 것과도 도저히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좋은 것들이다. 이를 감사하는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보면 매일의 삶 속에서도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물론 현재의 삶에서 발견하는 복을 세어 보며, 염려할 것만 생각하는 자가 되지 말고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자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릴 수 있다는 말씀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관련된 두가지 평화를 말한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평화이고 (peace with God) 두째는 하나님의 평화 (평강, 평안 peace of God)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와 구세주로 받아들인 자들은 하나님 과의 평화를 갖는다. (롬 4:25-5:1)  그러나, 하나님과 화평된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이런  평안은 우리가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뢸 때 경험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든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항상 기억하여 감사한다면,  그리고, 우리의 염려거리뿐 아니라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목적을 기도 가운데 인정하고 동의하고 우리 자신을 복종시킨 다면,  우리의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의 밀접한 교제를 갖게되고, 염려를 극복하며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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