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명령, 최고의 사랑" 마태복음 22:37-40 2022년 6월 19일 > 주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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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최고의 명령, 최고의 사랑" 마태복음 22:37-40 2022년 6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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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자매가 있었는데, 그녀는 늘상 예수님 없이는 자기는 살 수 없다고 말끝마다 고백하고, 또 교회식구들이 보기에도 그녀는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였기에,  이 자매의 별명이 “예수 없이는 못사는 자매”라고 불렀다고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이 자매가 목사님께 찾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고백하더랍니다.  자신이 기도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주님께서 나도 나 없이는 살 수 없으시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너무 감격스러워 운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자매님이 잘못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들었을까요?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요? 물론 우리 주님은 인간으로 오셨지만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코 죽을 수는 없으십니다.  그 자매를 위해 죽을 정도로 사랑 하신다는 말씀이시죠. 아뭏든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이토록 사랑하시는 분이란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한분 사랑하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사랑할 대상이 적어도 몇섭억이나 될텐데 어떻게 일일이 다 그렇게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무의식 적인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와 여러분이 부른 찬송에 의하면 주님은 우리의 산성, 우리의 요새라 하지 않고, 
나의 산성, 나의 요새라고 찬양합니다.  그리고, 오늘 마음에 감동을 준 특송에서도,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이란 말이 (우리의 하나님이 아니라) 그렇게 제 마음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를 따르는 모든 제자들에게 그들과 세상끝날까지 함께 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다 듣고 계신다는 말씀이지요.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 것처럼, 진정 여호와는 우리 각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자로서 우리 각 자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바울은 이렇게 도전합니다. “여러분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지를 스스로 시험하여 보고, 스스로 점검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모르면 여러분은 실격자입니다. (고후 13:5)  우리가 믿음 가운데 살고 있다면, 주님이 내 안에 거하심을 의식하며 산다는 말아닙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주님께서 바울 안에 사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연이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우리 모두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하여라하지 않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셨다고 고백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바울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이 세상에 바울 혼자만 존재했었더라도, 바울을 위해서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내어주셨을 것이란 말씀입니다. 내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주님께서 내 안에 거하시고, 나 하나를 위해서라도 주님께서 자신을 내어주셨을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날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 15:13)  자기 자신을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친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친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버리신 분이십니다.
 
부모님에게 열자녀가 있더라도, 부모님이 느낄 때는 한 자녀 한자녀가 그가 없이는살 수 없을 정도로 귀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한 자녀 한자녀 누구를 위해서든 그를 위해서라면 부모님이 자기의 목숨을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편 139:1 주님, 주께서 나를 샅샅이 살펴보셨으니, 나를 환히 알고 계십니다. 2 내가 앉아 있거나 서 있거나 주께서는 다 아십니다. 멀리서도 내 생각을 다 알고 계십니다.  3  내가 길을 가거나 누워 있거나, 주께서는 다 살피고 계시니, 내 모든 행실을 다 알고 계십니다. 4 내가 혀를 놀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께서는, 내가 그 혀로 무슨 말을 할지를 미리 다 알고 계십니다.  5 주께서 앞뒤를 둘러싸 막아 주시고, 내게 주의 손을 얹어 주셨습니다. 6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 (수억의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성도 한사람 한사람를 이렇게 자세히 알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의 변함없는 그 사랑이 생명보다 더 소중하기에, 내가 입술로 주를 찬양한다고 고백합니다 - 시편 63:3)   
 
13 주께서 내 속 내장을 창조하시고, 내 모태에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14 내가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오묘하고 주께서 하신 일이 놀라워, 이 모든 일로,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내 영혼은 이 사실을 너무도 잘 압니다. 15 은밀한 곳에서 나를 지으셨고, 땅 속 같은 곳에서 나를 조립하셨으니 내 뼈 하나하나도, 주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16  나의 형질이 갖추어지기도 전부터, 주께서는 나를 보고 계셨으며, 나에게 정하여진 날들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주의 책에 다 기록되었습니다. 17 하나님, (저를 향한) 주의 생각이 어찌 그리도 심오한지요? 그 수가 어찌 그렇게도 많은지요? 18  내가 세려고 하면 모래보다 더 많습니다. 깨어나 보면, 나는 여전히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어린 자녀들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이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을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잘 설명하셨습니다. 집떠난 작은 아들,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심정인데, 아 아비지의 심정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너 없이는 살 수 없다. 제발 돌아와라”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셔서 우리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자신의 독생자도 아끼시지 않고 보내신 것이 아닙니까?  (롬 8:32), 이런 사랑을 사도바울은  지식을 초월한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 17:23 (26) 여러분과 저 우리 각자 한 사람 한사람을 자신의 독생자 예수님만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도 아끼시지 않고 내어주신 사랑;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 준 사랑.  하나님이 우리를 초청하실 때 이런 사랑을 믿으라고 초청하십니다. (요 3:16)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랑을  알고 믿는 자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것입니다. (요일 4:14-16)
 
오늘 본문 말씀은 이토록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계명, 가장 중요한 명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은 무엇입니까? (37-39절)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구약성경에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계명은 (마가 12:28)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것;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 내가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것은 너희들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이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인간과의 관계성 그리고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성을 갖기 위해서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니까 모든 다른 피조물들은 각각 자기들의 종류대로 지으셨지만,  인간은 인간의 종류대로지으시지 않고, 하나님의 종류대로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는 공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역사 뿐 아니라 구원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치루신 댓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도 아끼지 아니하시 주셨습니다. (요 3:16;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내어 놓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전 5:10 -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것도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사시기를 원하셔서; 엡 2:14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화평을 주셨음이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가 되게 하시고 십자가에서 자기 몸으로 우리를 막은 원수된 담을 허심)

하나님은 사랑에 미쳤다 할만큼 관계성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에 미친 분이 아니라면 어떻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우리와의 사랑의 관계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의 뜻이요 또한 하나님의 목적을 드러냅니다. 가장 중요한 명령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뜻과 목적을 드러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수 많은 결정을 해야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저 기도할 때, 가장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나의 결정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도움이 된다면 하나님의 뜻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리 아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까?  우리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롬 8:29) 하나님은 왜 우리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바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완전한 모범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은 예수님의 삶을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표준을 드러냅니다.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명령하는 모든 내용은 자식이 잘되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성공기준은 돈과 명예, 건강, 자녀, 권력, 인기, 쾌락등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의하면 우리의  삶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삶을 살았는가로 측정됩니다.”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주께서 여러분끼리 서로 나누는 사랑과, 모든 사람에게 베푸는 여러분의 사랑을 풍성하게 하고, 넘치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13 그래서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에, 주께서 여러분이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잡힐 데가 없도록 굳건히 해주시기를 빕니다.” 살전 3:12-13)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했다면 우리는 성공한 삶을 산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실패했다면 우리는 실패한 삶을 산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계명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예수님께서 두가지 계명으로 답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두째는 이와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명령과 두째명령은 같은 것이기 때문에 가장 큰 계명을 두가지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별개가 아니고 떼어놀 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새계명 요 13:34; 고전 13:1-4)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요일 4:20-21; 5:2). 우리가 보이는 이웃을 사랑치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보이는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면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물론 여기서 주의 해야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한계를 아시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지 않고,,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웃은 누구인가?

사도바울은 로마교회에게 서로 사랑할 것을 강조하면서,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8 고 가르칩니다.  로마교회성도들에게는 로마교회가 그들의 이웃이란 말씀입니다. 또 갈라디아 교회에게도,  “온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느니라. (갈 5:14) 고 편지합니다. 그들의 교회가 그들의 이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에도 이렇게 편지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5)  교회의 서로 지체된 성도들의 관계가 바로 이웃의 관계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이웃의 영역을 확장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할 줄압니다., 각 가정에서 다른 식구들과 그리고  각 교회에서 다른 지체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제 제 조카 다니엘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감사한 일이지만, 불행한 것은,  이 적은 집안에 그나마 참석하지 않은 분이 여럿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집안에 이렇게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각자가 자기의 기준을 내려놓고 우리가 서로 내 몸처럼 서로 사랑하지 못한 것을 인정 한다면 화해할 수 있을텐데 그게 안됩니다., 저희 뿐 아니라, 관계성이 깨어진 가족들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도저히 회복될 수 없을 것같은 관계성이 너무 많습니다.

교회도 이런 금가고 깨어진 관계로 발전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세워주기를 힘쓰자”라고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권고합니다. (롬 14:19) Let us therefore make every effort to do what leads to peace and to mutual edification. NIV 그냥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라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기를 힘쓰라고 당부합니다. (NIV 영어 성경에는 “Make every effort to live in peace with everyone and to be holy”)

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16-18)  우리가 높은데 마음을 두기 때문에, 원수를 내 손으로 갚으려고 하기 때문에, 내가 먼저 손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관계가 깨어지고 회복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 이웃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 각자의 가정과 교회내에서 할 수 있거든  서로 화평할 수 있도록, 서로를 자기처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도록 노력하여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이 두 계명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마 22:37-38)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 사랑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합니까?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적인 관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을 보면 첫 4계명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 6개과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이 되야하는가?
 
사랑은 우리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갖고 사는 동안, 아담과 이브의 관계는 온전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원해졌을 때, 그들의 부부관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고 부르던 아내에게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하나님까지 원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약성경에서도 이렇게 명령 하십니다. (요일 3:23)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려면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와야 하기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공급 받을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본주의, 무신론자, 유물론자, 진화론자,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들, 모두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교 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가 다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Golden Rule 황금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보면 이 황금률은 거의 대부분의 종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기독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황금률과 일반종교에서 말하는 황금률 그리고 비종교인들이 말하는 사랑의 차이는 무엇이겠습니까?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 7:9-12)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고 명령하신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 근거는 9-11절에 언급하고 있는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대접하듯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명령하신것입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게 가장 귀한 것을 주시기 원하셔서 자기 아들도 아끼시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낌 없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내어놓으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요일 3:16)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른다면, 아직 사랑을 모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물론 친구간의 필레오 사랑이나, 연인간의 에로스 사랑이나, 가족들 간에 스톨게 사랑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카페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 자기 희생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런 아가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사랑을 알고 아가페의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종교의 황금률과 그리스도교의 황금률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요일 4:19)
 
 사랑의 근거가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것입니다. (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일 4:10-11) 하나님이 이토록 사랑하셨으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인간 평등을 주장했던, 공산주의 자들 스탈린과 모택동은 자국민을 수천만명씩 학살하있습니다.  북한 헌법 제3조에 보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사람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국가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리고 8조에서는 “사람 중심의 사회제도라고 표명합니다.” 그러나, 과연 북한사회가 사람중심의 나라입니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뿐 아니라, 인본주의, 유물론, 진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미국에서만 수천만의 아기가  살해당했습니까? 이들도 다 사랑을 말하지만, 자기 살겠다고 남을 죽인 것 아닙니까?
 
반면, 특별히 한국교회 문제가 많고 미국교회도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 그리고 없었다면 한국 차이가 어떻게 뜻입니까 미국의 없었다면 미국 사회가 어떻게 되었갰습니까?
 
제가 이미 말씀드렸죠.  언론플레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많이 욕먹고 있지만, 오래전 한국의 각 종교적활동 통계를 보니까 그래도 역시 있습니다.  2001-2003 동안  수재의연금 기독교 68.6%; 대구지하철 모금 기독교 69.7%; 태안 기름유출 사고 자원봉사  80% 
1996-2002 동안  해외구제 기독교인들이 64.9%/ 장애인·아동·노인복지시설 등사회복지시설의 경우에도 2005년 기준으로 나라에서 운영하는 것을 포함 한국전체 906개소 중 약 506개소 규모로 절반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거의 60%
헌혈과 각막·골수·장기기증, 호스피스 봉사 등에 있어서 기독교인이 83.4%, 탈북자사역 (90내지 100가 그리스도교인들입니다)
. 분명히 믿기는 그리스도의 사랑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각가정과 교회에서도 선한 영향력이 역사하고 있는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이 그토록 희생적인 삶을 살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고 따르는 저와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사랑에 강권되어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새번역) “이 두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있다”; (우리말 성경과 쉬운말 성경)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강령이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네이버 국어사전을 보니까 강령의 뜻을 “일의 근본이 되는 큰 줄거리.”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니까,성경에 수 많은 가르침과 명령과 주제들은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명령이란 큰 줄거리로 요약된다는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성경의 핵심이요 주제요 목적이라고 말할 수있습니다, 또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삶과 사역 즉 신앙생활의 목표요 표준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여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안들은 이 두 명령을 예수님의 최고의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성공을 했다면 우리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야 또 일에 실패를 했다면 우리는 실패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될 것입니다.  교회적으로도 마찬가지겠죠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제가 이에대해 간단히 말씀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답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거에 대한
교과서입니다그리고 기도는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됩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회개도 하고 주님께 감사와 찬양도 그리고 교제하면서 주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그러나 기도는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  저희 집안 식구들 간에 관계성의 문제가 삼각하다고 그랬지요. 저는 오래전부터 가족 식구들 간의 화해와 관계회복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문제점이 많지만, 이미 열매를 조금씩 맺기 시작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기도하는 자이기에, 우리 집안에서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당장 그 결과가 드러나, 모든 불협한 인간관계가 화해되고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목될 수 없는 관계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금이간 관계성, 깨어진 관계성, 소원해진 관계성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에 따라 용서하고 사랑하겠다는 고백의 시작입니다. 내 편에서 할일은 다하겠다는 순종의 표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상대방을 위해 기도조차 못하겠다는 것은, 주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 가장 중요한 뜻을 불순종하겠다는 뜻이며,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다른 것을 위해서 구하거나, 인생의 다른 결정을 위해 주님의 뜻을 구한다는 것은 실지로 하나님의 뜻보다는 단지 여러분 자신의 뜻을 추구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가족간에 성도간에 이웃간에 금이간 관계 깨어진 관계 멀어진 관계가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를 시작합시다.  적어도 내편에서는 주님의 명령대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기도를 시작한 분들은 눈에 당장 보이는 결과가 없더라도
관계과 회복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라도 계속 기도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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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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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명령, 최고의 사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서론:  하나님의 사랑 (마 28:20; 요 14:14; 고후 13:5;갈 2:20; 요 15:13; 시편 139:1-6. 13-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 17:23
 
1.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명령은?
 
구약성경의 613개의 계명증 가장 큰 계명: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것;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할 것’

하나님은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의 인간과의 관계성 그리고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창조; 예수님을 보내신 구원사역; 하나님의 선택의 목적 (롬 8:29 최고의 사랑의 삶을 사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2.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가장 중요한 한 가지 계명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는데, 예수님께서 두가지 계명으로 답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째는 이와같으니"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은 떼어놀 수 없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의 형제나 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요일 4:20)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웃으로서의 교회: “이웃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 13:8); “온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어졌느니라.” (갈 5:14);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5)

이웃의 영역을 확장하자;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사랑을 실천하자: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세워주기를 힘쓰자 (make every effort)” (롬 14:19);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내기를 힘쓰라 (make every effort)”  (히 12:14);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롬 12:18)

3.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으로 먼저 언급하셨습니다. (마 22:37-38)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웃 사랑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합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적인 관계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적이기 때문에 (십계명)
사랑은 인간에게서기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일 4:19);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요일 3:23)  그리스도교인와 일반 황금률의 차이 (마 7:9-12)  요일 3:16; 4:19
 
4.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새번역) “이 두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있다”; (우리말 성경과 쉬운말 성경)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은 이 두 계명에서 나온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두 명령이 성경의 모든 가르침과 명령의 요약
성경: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실천을 위한 지침서
기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가장 근본적인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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